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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를 말하지요. 이탈리아어로 2년에 한 번이라는 뜻으로, 1895년 시작된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유명세를 얻으면서 대규모 국제 전시회를 일컫는 말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세계 예술계에서 ‘비엔날레’라는 단어는 더 이상 유럽과 남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서울, 타이베이, 요코하마 같은 아시아의 도시들이 독특한 문화적 맥락과 실험적 예술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비엔날레 무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세 도시의 대표 비엔날레가 어떻게 국제 예술 흐름을 이끌고 있는지, 그리고 각 지역 특유의 색채를 예술로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서울, 디지털 도시의 감각을 담아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단순한 현대미술 전시를 넘어, 디지털 기술과 도시 경험을 예술적으로 융합해온 대표적인 비엔날레입니다. 2000년에 시작된 이 행사는 2년마다 서울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열리며, 테크놀로지와 도시적 삶의 변화를 반영한 전시로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1년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주제는 “하루하루 탈출하다(One Escape at a Time)”였습니다. 당시 예술감독은 홍콩 출신 큐레이터인 얀 찬(Yan Chan)이 맡았고,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 상황에서 ‘도피’, ‘일상 속 저항’, ‘개인의 감정적 피난처’ 같은 개념을 예술적으로 조명했습니다. 전시는 전 세계 41개국에서 초청된 58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미디어 아트, 영상, 사운드, 설치 작업 등을 선보였습니다. 주요 작품 중 하나는 인도 작가 파라크 박시의 <무대 밖의 몸>이라는 설치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은 감시 시스템과 도시 속 개인의 위치를 탐구하는 구조였습니다. 무빙 카메라가 설치된 공간을 관람객이 지나가면 스크린에 자동으로 자신의 실루엣이 왜곡되어 비치는 방식이었죠. 이는 기술이 개인의 정체성과 자유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직감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한국 작가 이불(Lee Bul)의 대표작 <전복된 우주> 시리즈 일부도 재구성되어 소개되었으며, 이는 인간이 기술을 통해 확장되는 존재이자 스스로를 감금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단순히 미디어 예술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 속에서 동시대 미디어 문화를 실험하는 공간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매 회차마다 서울의 도시성과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데, 특히 최근에는 젠더, 기후위기, 플랫폼 자본주의 등의 사회적 주제가 자주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단지 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의 위치와 감정을 자각하게 됩니다. 기술의 이면, 스마트시티의 그림자, 정보 과잉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성 같은 주제들이 비엔날레의 주요 테마로 반복되며,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가 단순한 무대가 아닌 ‘공감각적 실험실’로 변모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타이베이,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철학적 비엔날레
타이페이비엔날레는 아시아에서 가장 실험적이며 철학적인 국제미술전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이 비엔날레는 타이완의 국립타이완미술관(NTMoFA)이 주최하며, 기존의 미술계 관습을 해체하고 새로운 지식 생산의 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0년 타이베이비엔날레는 특히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주제는 “You and I Don’t Live on the Same Planet(당신과 나는 같은 행성에 살고 있지 않다)”였습니다. 이 주제는 프랑스의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와 큐레이터 마르틴 기녜(Martin Guinard)에 의해 제안되었으며, 기후 위기, 정치 이념, 현실 인식의 차이 등 지구 위에 존재하지만 전혀 다른 현실을 사는 인류의 상황을 예술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전시는 총 57명의 국제 작가들이 참여했으며, 각 작품은 서로 다른 '행성'을 상징하는 방식으로 전시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안전 행성(Safety Planet)’은 생존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주제로 한 공간이었고, ‘탈출 행성(Escape Planet)’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개인의 심리를 비추는 작품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주요 작품 중에는 프랑스 작가 알랭 드클루와 안느-소피 밀루아의 협업작 <에어샤워>가 있었습니다. 이 설치작품은 실제로 오염된 공기를 정화해 주는 ‘공기 샤워’ 장치를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기후위기와 개인의 몸이라는 감각적 주제를 강하게 전달했습니다. 이외에도 사회적 갈등, 정치적 경계, 생태적 시간 등 매우 다양한 담론들이 작품 속에 녹아 있었으며, 다수의 작가들은 텍스트, 퍼포먼스, 사운드워크 등 비정형적인 형식을 활용했습니다. 전통적인 캔버스 회화나 조각 작품보다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사유의 무대가 되는 방식이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타이베이비엔날레가 아시아 예술계에서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런 점입니다.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세상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그런 과정을 전시 공간 전체에 녹여낸다는 데 있습니다. 관람객에게 전시는 하나의 ‘문제제기’가 되고, 그 질문의 해답은 각자의 삶과 세계관 속에서 찾게 됩니다. 그만큼 타이베이비엔날레는 지적이며 감각적이고, 무엇보다도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예술 플랫폼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요코하마, 예술이 도시를 걷는 법을 바꾸다
‘요코하마트리엔날레’는 일본의 항구 도시 요코하마에서 3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현대미술제입니다. 2001년 시작된 이 국제 전시는 전통과 실험, 도시와 예술, 동양과 서양의 시선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왔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글로벌 예술행사로 성장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2020년 제7회 요코하마트리엔날레는 ‘Afterglow(여운)’이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인도 출신의 아티스트/큐레이터 그룹 ‘Raqs Media Collective’가 총괄 기획을 맡았습니다. 이들은 과학, 문학, 역사, 사회 비평을 아우르는 다층적인 전시를 선보이며 요코하마 전역을 예술로 감싸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전시에서는 ‘침투 가능한 생태계’, ‘바이러스 이후의 사회’, ‘지속가능한 관계’ 등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사유하는 주제들이 다뤄졌습니다. 작품 대부분은 시각적 충격보다는, 사운드, 냄새, 공간 구조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감상자의 내면을 자극하는 형식이었죠. 특히 인도 작가 프라프룰라 가이콰드의 <물속의 이야기>는 요코하마의 오래된 창고 건물 내부에 설치되어, 바닷속에서 전해지는 환청과 기억을 주제로 공간 전체를 물의 감각으로 채운 설치 작품이었습니다. 관람객은 어둡고 습한 통로를 지나며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도시의 기억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각 기반 전시는 요코하마라는 도시가 갖는 역사성과 항구 도시 특유의 정체성과 절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요코하마트리엔날레는 일반적인 화이트큐브 공간에서 벗어나 도시 자체를 전시장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줍니다. 창고, 폐공장, 지하 통로 등 일상적이지만 낯선 공간을 활용하면서 관람객은 도시를 마치 미지의 세계처럼 탐험하게 되죠. 이러한 전시는 단순한 미술 감상이 아닌 ‘도시-걷기-예술’이라는 새로운 감각의 연계를 선사합니다. 요코하마트리엔날레는 예술을 통해 도시의 시간을 새롭게 인식하고, 공간이 지닌 무의식의 층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즉, 이곳에서 예술은 도시를 보는 시선을 바꾸고, 걷는 방식을 바꾸며, 기억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면, 요코하마라는 도시는 그저 항구 도시가 아니라, 예술이 새긴 흔적과 여운이 가득한 하나의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서울, 타이베이, 요코하마는 각각의 지역성과 실험정신을 무기로 세계 예술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비엔날레들은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라, 예술이 사회, 철학, 기술, 도시와 교차하는 거대한 플랫폼입니다. 앞으로도 이 도시들이 만들어낼 예술적 흐름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